우리나라 국토는 70% 이상이 산지로 덮여 있습니다. 영동과 영서를 나누는 한반도의 등줄기 태백산맥과,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와 경상도부터 충청도,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소백산맥을 쉽게 떠올릴 수 있죠.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 등 우리나라에 솟아 있는 산만 해도 4,440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사실 특이한 종류의 산이 있습니다.
‘쓰레기산’이라는 단어, 이제는 아마 모두에게 익숙할 겁니다. 지정된 폐기물 매립지가 아닌 인적이 드문 지방의 공터나 야산 등지에 불법으로 몰래 버리고 간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모습을 의미하죠. 생활 쓰레기부터 플라스틱 등 재활용 쓰레기, 건설 폐기물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쌓여 있는 쓰레기산이 전국에 무려 400여 곳이나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경북 의성 쓰레기산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21만t의 쓰레기가 축구경기장 두 배 면적에 걸쳐 쌓여 있던 이곳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8년 겨울 발생한 화재였습니다. 10m 넘게 쌓여 있던 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 가스와 열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한 달이 넘게 이어졌지요. 2019년 3월에는 CNN에서 관련 기사를 보도하며 국제 사회에도 우리나라 쓰레기산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경북의 또다른 지역인 영천에 있는 한 공장 부지에 몰래 버려진 쓰레기는 무려 7천t. 단기 임대된 공장 내부에는 9m 천장까지 쓰레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보도된 바에 따르면 쓰레기를 더 많이 쌓기 위해 천장의 전등 전선을 뜯고 화장실 공간도 무너뜨렸다고 하죠.
쓰레기산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 때문입니다.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하다 적발되면 징역 2년 혹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지만, 처벌 수위보다 불법 투기를 통해 얻는 이익이 훨씬 큽니다. 처벌되는 사례 역시 드물고요. 이렇게 쌓인 쓰레기산은 결국 세금으로 치워야 하는데, 그 비용이 수 억원 대에서 의성 사례처럼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접 치워야 하는 지자체와 세금을 내는 우리 국민 입장에서는 참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쓰레기도 잘만 활용하면 순환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앞장서고 있는 게 바로 시멘트 업계이고요.
소중한 자원이 된 쓰레기
시멘트를 만들려면 석회석, 점토, 규석, 철광석 등의 재료를 소성로에 넣고 약 2,000°C의 열을 가해야 합니다. 열을 발생시키려면 연료를 태워야 하겠죠. 여기에 사용되는 게 유연탄, 바로 석탄입니다. 국내에서는 무연탄만 생산되기 때문에, 유연탄은 100% 수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형 선박을 이용한 운송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온실가스가 발생하지요.
여기에 더불어 가열을 위해 석탄을 연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에 시멘트 업계는 기존의 탄소 배출량도 줄이고 쓰레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떠올렸습니다. 쓰레기산에 쌓여 있는 폐기물 일부를 재활용하여 유연탄을 대체하기로 한 것입니다.
시멘트 업계는 곧장 행동에 나섰습니다. 경북 의성 쓰레기산에 쌓여 있는 폐기물을 분류하고, 그중 가연성 폐기물, 즉 폐비닐과 폐플라스틱 등의 폐합성수지를 순환자원으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0여개월이 지나, 드디어 쓰레기에 덮여 있던 땅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쓰레기가) 전체 21만t 정도 됐습니다. 그 중에서 10만t 정도가 시멘트 공장으로 갔습니다.” 권기환 의성군 도시환경국 담당의 말입니다. 쓰레기 처리 방법은 소각 혹은 매립인데, 의성군에 쌓여 있는 쓰레기의 양이 워낙 많은지라 국내의 소각/매립 시설에서 처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시멘트 산업에서 순환자원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쓰레기 처리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삼표시멘트 삼척 공장 역시 3년 전부터 가연성 폐기물 전처리 시설을 통해 삼척시의 생활 폐기물 대부분을 처리해 오고 있습니다. 삼척 공장에서는 시에서 하루 발생하는 생활 폐기물 약 50t를 연료화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삼척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연간 15,000t 정도 되는데, 저희 공장과 삼척시가 협업을 한 이후 가연성 쓰레기는 매립장으로 가는 게 하나도 없이 저희 공장에서 전량 처리하고 있습니다.” (삼표시멘트 담당자)
이처럼 순환자원은 이미 발생한 생활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자원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폐기물 처리 및 연료 구매/수입 비용을 줄여주는 값진 원료입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배재근 교수에 따르면 폐기물 발생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처리 시설은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처리 비용이 급등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멘트 업계가 폐기물을 원료 혹은 연료로 받아들여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쓰레기 대란 시대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가연성 폐기물은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유연탄을 대체하는 걸까요?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되는 과정
순환자원은 시멘트 제조 공정의 핵심인 소성로의 연료로 쓰입니다. 거대한 원통형 가마인 소성로는 1분에 네 번씩 회전하면서 시멘트 원료를 굽는데, 이 과정에서 소성로의 온도는 2,000°C까지 올라갑니다. 이때 소성로 한쪽 끝에 연결돼 있는 메인 버너에 유연탄 대신 작게 분쇄한 폐합성수지를 넣습니다. 이것이 타면서 초고온의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죠.
공정 시 발생하는 열의 온도가 2,000°C에 달하므로 다이옥신, 벤젠,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가스는 완전 연소됩니다. 유럽에서는 시멘트 소성로가 가장 안전한 소각시설이라는 논문도 나와 있다고 하지요.
이렇듯 유연탄을 가연성 폐기물로 대체하면, 첫째 타면서 유해 물질을 만드는 가연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고, 둘째 질소산화물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으며, 셋째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유연탄을 국내에서 발생한 폐기물로 대체하여 자연 환경 보존과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유럽에서 오래 전부터 연구하여 이미 도입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무려 111년의 역사를 지닌 벨기에 오브르(Obourg) 시멘트 공장 역시 유연탄을 순환자원으로 대체하여 시멘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유럽 내 모든 시멘트 공장은 순환자원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시민들 인식에도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유럽에서 생산되는 시멘트 물량의 절반(연간 9천만t)이 순환자원을 활용해 생산되며, 이 공정을 통해 제조된 제품은 친환경 시멘트로 인정받습니다.
유연탄 대체 외에도 시멘트 업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원을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소성로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열을 재활용하여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기도 하며, 1990년대부터는 폐타이어를 재활용하여 시멘트 연료를 대체해 오고 있습니다. 석회석과 점토, 철광석 등 시멘트의 원료는 천연 자원이므로 유한할 수밖에 없지요. 이것을 순환자원으로 대체하면 천연 광물을 보존함과 동시에 매년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폐합성수지 및 폐타이어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제조 원가를 낮추고 온실가스 발생량도 줄이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시멘트 제조 공정 중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출처는 크게 두 군데입니다. 하나는 유연탄을 연소하며 발생하는 온실가스, 다른 하나는 뜨거운 열로 인해 원료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입니다. 시멘트 업계는 이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온실가스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막 시작된 탄소배출 절감을 향한 여정
시멘트(콘크리트)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설 원자재 중 하나입니다. 당장 우리가 생활하는 가정과 사무실의 건물부터 매일같이 지나치는 교량과 도로, 철로, 우리가 걷는 도보 위에 깔린 보도블록에 이르기까지, 가히 인간 문명의 근간을 형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시멘트 사용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매년 생산되는 시멘트 수십억 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모르는 척할 수는 없죠. 역시 인간 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2019년, 스웨덴 출신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UN 본부에서 세계 정상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생태계가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멸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다들 하는 이야기라고는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꿈 같은 얘기라니. 부끄럽지도 않나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전망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100년 넘게 무서운 줄 모르고 대기로 뿜어 낸 탄소로 인해 산은 불에 타고, 도시는 물론 국가가 물에 잠기고 있으며, 동식물과 인간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시멘트 업계는 이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요를 맞추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더욱이 팬데믹을 거치며 둔화되었던 성장 그래프가 다시 상승세를 타며 한동안 건설 자재 수요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저탄소 연료를 사용하며, 재료 효율성을 제고하고,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등 혁신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며 시멘트 업계는 탄소 배출 주범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그 첫 걸음으로 시멘트 업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쓰레기를 순환자원화하여 기름으로, 전기로, 숯으로 재탄생시켜 사용함으로써 넷제로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하고 있습니다.